강상의 도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게 바로 강상의 도다.
없는 놈이 있는 놈에게 개기지 마라.
아들이 아비에게 대들지 마라.
감히 아들이 아버지의 왕 자리를 위협하다니!!

반정을 해도 왕만 바뀔 뿐이다.
그 어느것도 아들을 지켜달라는 아비의 유언보다 더 큰 대의는 없다!!

반정으로 보위에 오르신 지금의 주상전하도 반정을 할때는 같은 말을 하시지 않았을까?
반정을 해도 세상이 변할 것 같은가?
양반, 상놈을 없앨 수 있소?
청에게 공녀를 바치지 않을 수 있소?
바뀌는게 무엇이오? 아하.. 조정의 권력자가 나리들로 바뀌는 거?

세상을 바꿔라, 동생을 지켜라 그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는 것이오?




어떤 기사에서, 최강칠우는 '한성별곡' 과 같은 '세상을 바꾸려다 목숨을 잃은 자들의 아이들의 이야기' 라는 걸 보았다.
다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꿈을 위해 목숨을 걸고 덤벼들었다. 그리고 어찌할수 없는 현실의 벽에 쓰러지며, '다음 세대' 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반드시 살아남아 세상을 바꿔라!

그래서 칠우는 살아남았다. 빌붙어서 징허게......
무륜당이 박살나고, 칠우부의 가슴 절절한 유언 이후 암전되며 시작되는 칠우의 나레이션은 '세상을 바꾸려했던 사람들' 을 조롱한다. 뭘 어떻게 해도 세상은 결국 바뀌지 않고, 사람만 바뀔뿐이며, 어찌되었건, 난 아버지의 유훈을 받들어 '살아남았다' 라고...
동생은 반가의 양녀로 들여보내고, 자신은 의금부 나장의 아들로 들어가 아비의 성을 버리고 '최칠우' 가 되어 살아남았다.
그리고 살아남기위한 기술을 우리에게 친절하게 제시한다. '너무 튀어서도, 너무 못나서도 안된다' 고....

하지만 칠우는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지언정, 내 주변의 아끼는 사람들이 고통받으면 미약하게나마 돕기도 한다. (적극적으로 자객일을 하기전에)

지독히도 현실적이다. 우리모두가 그렇게 살지 않은가....

아비가 꿈꾸었던 세상에 대한 소망이 개박살 나는것을 보았다. 그리고는 무책임하게도(?) 어린 칠우에게 더 어린 동생을 지키라 부탁하고, 거기에 더해 세상까지 바꾸란다. 아직 어린 그로서는 동생과 살아남기도 벅차죽겠는데......
그러니 그가 소윤의 비밀을 알고 소현세자를 욕하며 하는 말은 소현세자뿐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저는 죽어버리면 그만인데.. 지켜도 못지켜도, 알게 뭐야.. 그런데, 남은 사람한테 그런 짐이나 지우고!!'

꿈꾸던 세상은 커녕, 아직 혼자 일어설수도 없는데, 지켜줄 사람조차 잃어버린 칠우의 원망과 절망이 묻어나는 말이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누군가와 칠우는 닮은듯 닮지 않았다. 바로 한성별곡의 박상규와 말이다.
파락호로 살다, 나영을 만난 후 세상에 대한 꿈을 꾸었던 그는 나영집안의 몰락으로 세상에 대한 뜻을 버렸다.
이런 세상따위 그저 배운대로 섞여 살다 가면 그만이라는게 그의 생각이었다. 어차피 뭘 해도 되지 않을거라는 걸 터득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박상규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칠우는 다르다. '자신안의 정의감에 짓눌려 죽지 않기 위해' 주위 사람들을 돕는 자객일을 할 뿐이다. 자객단 초반 그가 정한 원칙은 민승국이 내세운 원칙과 다르다. '품위있고, 명분있으며, 도리에 합당한 일' 만을 하려는 민승국에게 '자객질에 그런게 어딨으며, 들어보고 의논한 결과 해결할 수 있는 일이면 수락하면 된다' 라고 말을 한다. 그리고 민승국 역시 칠우의 생각에 점점 끌리게 된다.

이 두 드라마는 '하나의 진실' 이라는 점에서 종반에 서로 개인으로 움직이던 사람이 맞물리게 되는데, 결국 박상규는 안주하려다 나영으로 표현되는 이상의 꿈을 버리지 못한다. 다시한번 어리석은(?) 꿈을 꾸기에 이른다. 세상을 바꿔보려 한다. '푸른솔'을 남기려... 그리고 나영과 상규는 꿈속에 스러져간다.

이제 칠우도 운명의 시간에 맞닥뜨려 선택의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선택을 강요하는 양반 나으리들 앞에서 칠우는 저와 같이 외친다.

세자는 두 가지 유훈을 했다. 당신들은 세상을 바꾸라는 유훈을 따르겠지만, '난 지켜내어 살아남으라' 는 유언을 따를 것이다.
세상 그 어느것보다 '살아남는것이 중요하다' 라는 칠우의 외침이다.
과연 어느것이 옳을까..
민승국의 말처럼 '시스템을 바꾸면' 칠우의 말처럼, '양반 상놈으로 구별되는 약한자들의 목숨들이 행복해 질까?'

그래서 현재는 어떻단 말인가.. 일단 표면적으로 보기에, '사람의 목숨값은 모두 같고, 평등하다' 는 세상이다. 양반 나으리 민승국의 말처럼 어찌됐건 '시스템은 바로 잡혔다' 하지만 칠우가 외친 '반상과, 청에 팔아치우는 공녀들로 대변되는 약한 목숨들이 안주하며 행복하게 살수 있느냐?' 라면 나는 답을 못하겠다.
그래서 칠우는 말한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살아남는게 중하다' 고.... 우영이에게 했던 것 처럼, '없는 놈들은 한 개라도 가진 계란을 지키는 게 최 우선' 이라고......

칠우가 어떻게 외치건 간에, 결국 그는 반정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리게 될 것이다.
과연, 그때 그의 선택이 한성별곡의 상규 도령처럼 이상을 위해 다시금 달려가게 될 것인가..
아니면 풀뿌리처럼 목숨을 이어 개개인이 행복할 지점이 어디인가를 모두가 납득해 '세상이 바뀔때까지' '살아남는 것이 우선' 이라고 할 것인가....... 나는 이것이 궁금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칠우가 후자를 선택해줬으면 좋겠다.
칠우가, '세상을 바꿔 보겠다' 고 나서게 되면 지금까지 그의 모습과 함께 나는 심한 배신감을 느낄 것 같다.
내가 칠우를 좋아하는 건, 그가 모든 좌절을 겪으며 살아남은 후예이기 때문이다.

위로부터의 개혁은 한계가 있다. 모두가 문제점을 알고 들고 일어날때는 너무 늦은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때야 말로 무언가가 확실하게 바뀌는 때 이며, 가장 빠른때가 아닐까.....




뱀발..
작가가 강약 조절을 못하고 있긴 하지만, 스토리를 구성하는 것이나, 각 캐릭터들의 사상 정립을 아주 잘 하고 있다.
이 드라마의 최대 문제점은 연출이고, -_-
강약을 가끔 조절 못하는 대본.. 이 아닐까...;;
(강약조절을 못해서, 매력적인 인물구성,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커트 시켜야 할 곳이 지나치게 길게, 그리고 풀어줘야 할 곳이 지나치게 짧게 가고 있다. 흑산이 문제나, 칠우와 승국이 서로 대립하게 되는 문제는 좀더 베이스를 깔았어야 한다고 본다. 시즌제였다면 좋았을텐데.. 유쾌한 자객일로 유대감이 형성 된듯한 두 사람이, 결국 신분에서 오는 생각의 한계가 가장 첨예하게 부딪는게 바로 15회였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섬세하게 캐릭터들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해야 할 부분들이었지만, 10부정도까지 강약 조절을 잘못하는 바람에 두 캐릭터의 역사를 쌓을만한 시간이 부족했다.)

연기는 에릭이 결코 연기를 못한다는 생각은 안든다.
특히, 힘없는 민중을 대변하는 칠우의 사상을 조용히 말하는 연기는 아주 좋다.
(이 드라마에서 진짜 문제는 나도 모르고 '발연기' 라는 모 사이트 용어를 쓰고 마는 연두의 연기와, (.....) 지금부터 나 표정연기 들어간다는 티를 내는 소윤의 과장된 연기다. 목소리연기도 과장인데, 표정까지... 진짜 이 두 사람은 답이 없다. 그래도 연두는 신인이라 그렇다 치지만... 구혜선은........OTL 그냥 차분히 연기를 할 때가 좋던데, 두려움에 떨거나, 분노에 떠는 연기는 진짜 민망스럽기 그지 없다.)
그래도 군대에서 발성연습은 좀 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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