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는 송편을 사오시더니, 올해는 다시 송편을 만드시기로 결심하신 어마마마..
점심을 먹고 열심히 송편을 연성하여, 5시 무렵에 모든 송편 완료...
그나마, 의자에 앉아 송편을 빚으며 힘들어했더니, 남은 가루들을 냉동실로 넣으시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신 어마마마 덕분에 저기서 끝난 것이다. -_-
(아마 엄마도 힘드셨겠지... -_-)
뭐, 학교를 외지로 나간 이후로 명절이랍시고 일찍오지도 않을뿐더러.. 왔다 하더라도 손하나 까딱 안하는 동생님은 올해도 손가락 하나 까딱 안하시고 허리 아프게 송편을 빚고 있는 엄마와 누나 앞에서 하하거리며 텔레비전만 보고계셨다.
보다 못한 엄마가 '앞으로 결혼해서 어쩌려고 하느냐! 요즘은 남자들도 도와야지' 라며 도울것을 종용했으나...
동생님은 '그럼 안오면 돼지..' 라는 웃기지도 않은 멘트를 날리며 5시간에 걸쳐 고생하고 있는 엄마와 누님 옆에서 텔레비전만 실컷 보고 들어가시더니, 게임을 하고 앉아계시더라...
저런 동생님에게도 시집와 주시는 고마우신 올케가 있다면, 어딘가에 있을 미래의 올케... 결혼해서도 저 모양이면 무슨일이 있어도 내가 죽여버릴게........
아침을 늦게 먹어, 점심을 건너뛰고 송편을 빚다보니, 텔레비전에서 박지성이 선전하는 라면광고가 나오더라..
마침 3시 무렵.. 출출해지길래, 빚은 송편을 새로 찌고, 새 반죽을 만드는 사이 라면 하나를 끓여먹었다.
타이밍도 좋지...
명절이라고, 집에 계시는 법이 없으신 아버지께서 새벽같이 운동을 나가셨다 돌아오셔서는............
'넌 엄마가 고생하는데, 돕기는 커녕 옆에서 라면이나 먹고 있냐?'
라는 말씀을 하셨다.
아아.. 원래 그러신 분인거야 잘 알고 있었지만, 늘 명절때만되면 자식의 도리고 뭐고간에 한번 상을 뒤엎어버리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은 비단 내가 성질머리가 못되먹은 딸이라서 아닐거라 생각한다.
욱하는 기분을 꾹 눌러삼키며, '아버지는 명절이신데도 항상 집에 안계십니다...' 라고 우회해서 가족과의 시간을 상대적으로 소홀하시는 아버지에 대한 20년이 넘은 원망과 불만을 털어놓았으나.........
분명, 내년 설에도 아버지께선 연휴 첫날 새벽같이 운동을 나가실 것이다.
뭐, 설이야.........
요즘엔 어릴때처럼 쌀을 빻아 방앗간에서 전날에 가래떡을 뽑아 집에와서 썰지 않으니 추석에 비해 일이 편하다.
4식구의 조촐한 차례상과 음식을 장만하면 되니, 어느 종가처럼 전 부치는 것 하나도 큰 일인 상황은 아니니 말이다.
상대적으로 설에는 할 일이 없지만, 추석이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송편을 빚고, 전 부치는 걸 돕고................
손가락 하나 까딱안한다는 집안에서조차 이것만은 '남자 일' 이라며 드디어 손을 움직인다는 '밤 치는 일' 까지도 엄마와 내가 다 해야 했다.
이쯤되면 이게 어딜봐서 '가족 화합의 명절' 인가? 가사 노동력 착취 현장이지...
그리고는 아버지께선 저녁 식사때, 만든 송편을 몇 개 가져와보라고 말씀하셨다.
다행히(?) 올해는 말이 없으시더라... 재작년 같은 경우에는 '모양이 이게 뭐냐..' 라고 하셨지........
(근데, 아버지.. 그거 제가 옆에서 중얼중얼 거리며 30분넘게 투덜거리니 마지못해 딱 한 개 빚으신 아버지 작품이셨거든요?)
이제 나이도 얼추 들었겠다.........
내년 설에는 20년 넘도록 마음속에 눌러두었던 불만을 터뜨려 볼 생각이다.
아니, 실은 어제 터뜨리고 싶었다. 하지만 모처럼 명절이니 꾹꾹 다시 구겨서 밀어넣어뒀는데...
이제는 정말 싫다.
젊으셨을때는 일이 바빠서(실제로 많은 샐러리맨들이 명절 전까지 일하지 않았는가...) 그러셨다 하지만, 이제는 지위도 있으시고, 또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 그런 풍토도 많이 사라지는 추세에, 명절에 홀로 운동을 떠나시는 것이 정말 싫다!!
평소 주말까지야 어쩔수 없다 치더라도.. 명절만큼은 집에 계시며 함께 명절 음식 장만하며 가족 구성원과 뭔가 조금이라도 끈을 유대하려고 하셔야 하지 않는가...
당신은 그러지 않으시면서, 왜 우리에겐 자식으로서, 친척 혈육으로서 정이 없다 하시는건가......
그걸 대체 누구에게서 받았다고 생각하시는건가.......
어쩌다 주말, 아버지께서 일찍 집에 들어와 주무시고 계시면 불편하고 심지어 '어디 편찮으신건가..' 라는 생각을 너무도 당연하게 떠올리도록 만든것은 바로 아버지 당신이시다.
명절만큼은........
고작 3일 연휴만큼은 오롯이 '가족이 함께 모이는' 상황이 되었으면 좋겠다.
새벽 일찍 운동 떠나신 아버지에 대한 불만과, 명절 음식장만 스트레스와, 대학교육까지 마친 동생님의 시간을 역으로 달리는 사고방식에 화를 삭혀가며, 기분 나쁜 명절을 보내고 싶지 않다.
내년 설은 우선 '손가락 하나 까딱 안하셔도 좋으니' 연휴기간 동안,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는 버릇을 들이는게 첫 목표이다.
그리고, 내년 추석때는 '손가락 하나를 좀 까딱' 하시도록 하는게 목표다!!!!!!
지금의 겉모습뿐인 '가족' 의 형태를 만드신 건, 아버지 당신이시다!!
나에게...... 우리에게.......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그 '가족' 이라는 걸 강요를 하시려면 당신부터 먼저 바뀌어 주실것을 강력하게 요구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