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대하고 고대하던 화려한 휴가를 보았습니다.

지겹도록 적어왔었지만, 친지분들이 모두 광주에서 생활하십니다. 외가, 친가 모두요....
고향은 담양과 나주로 광주 인접지역이나, 하여간 그 80년대에는 다들 광주로 터전을 옮긴 때였습니다. 물론, 한참 전에 성인이 되셨으니 밥 벌이를 위해서라도 삶의 터전을 옮겼어야지요..
80년 5월에 아버지는 광주에 계시지 않았고, 어머닌 계셨습니다.
그리고, 전 어머니가 광주항쟁을 입에 언급하신걸 들은적이 없습니다. 함께 다큐를 보면서도 그 일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으시던 엄마가 광주에 대해서 조금씩 말하게 되신건, 29만원짜리 문어대가리가 풀려나면서 였습니다.

만일, 정말 재수없게, 그 때, 아버지께서 광주에 계셨거나, 광주에 계셨던 엄마가 불행한 일을 당하셨더라면, 지금 여기서 타자를 치고 있는 저란 존재는 존재할 수가 없었겠죠. 직접적으로 상관없는 듯 하지만, 부모님의 고향이 특정 지역에서 가깝고, 그 당시 삶의 터전이 특정지역이었다는 사실만으로 지금 내가 존재하는게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새삼 생각하게 된달까요..


2. 영화는 상업영화를 표방하는 만큼, 먹물을 쏙~ 빼고 이야기를 합니다.
먹물을 뺀 의도는 좋았으나, 그게 얼마나 관람객들에게 효과적으로 먹혀들어갔는지는 궁금하군요.
제 바로 옆 좌석에서 세 모녀가 영화를 관람했는데, 엔딩이 올라가는 동안, 그들의 대화에 가슴이 더 먹먹해졌습니다.
세 모녀의 어머니는 재밌게 보셨다고 말씀을 하시고, 큰 딸은 '난 중간에 한번 지루했어..' 라고 말하고, 작은 딸은 '이준기가 나오는 부분까지는 볼만 했는데, 그 다음은 진짜 지루하더라..' 라고 말하더이다. OTL

아이고~~
감독이하 배우들은 '광주가 뭔지 몰랐던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인터넷 검색창에 광주에 대해서 한번 검색 해 보기만 해도 고맙겠다. 그것이 우리 영화의 목표다' 라고 말하는 와중에, 그야말로, 영화를 보고 지식인에 물어봐 주길 원하는 대상자들이 저런 말을 하다니........
이거, 성공한 영화입니까? 실패한 영화입니까?

전, 마지막 웨딩사진을 보고, 그 상징적인 표현에 중간중간 아쉬웠던 장면들을 잊을정도로 좋았습니다만, 그 여운을 느낄 틈도 없이, 옆 좌석에서 들려오는 말에, 머리가 아찔해졌습니다.

영화를 보러 참으로 젊은분들이 많이들 오시는데, 거기에 아이들 손 잡고 영화를 보여주러 오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그 분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돌아가셨는지 궁금합니다. 단순히 '아.. 슬프지만 재밌었어..' 라는 감상만 가지고 돌아가신다면, 정말 우울함이 극에 달할 것 같습니다.
이게, 같은 전라도지만, 정치색이 참으로 옅은 전북지역의 특징인걸까요? 고향인 순천땅에서 봤다면, 관객들의 반응이 과연 어땠을까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수가 없더군요.
-저도 상당히 젊은 나이입니다만, 젊은분이라 적은 이유는, 그나마 전 시험을 위해 달달 외우기라도 한 국사 세대이고, 그 밑의 대학생들은 국사는 필수지만, 근 현대사는 선택이라던가... 한다면서요? 진짜 빌어먹을........... 이죠....... -

정말, 감독 이하 배우들의 소원대로, '단순히 영화 감상에서만 그치지 말고, 광주의 진실을 알려는 노력' 으로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욕 밖에 안나와요...

29만원짜리 문어대가리를 기념하는 공원을 만들었다지 않나, 29만원짜리 문어대가리를 사모한다는 모임을 만들지 않나, 29만원짜리 문어대가리가 뭍으로 나와 놀던 시절이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범죄도 적었다질 않나..
-놀고 있네.. 그럼 그 다음에 물태우 시절에 범죄와의 전쟁은 뭔데? 없던 범죄자들이 다량으로 튀어 나왔냐? 29만원짜리 문어대가리 시절에도 끔찍한 범죄들 많았다고!!! 찍소리도 못하게 찍어 눌러서 그렇지..-


3. 상업영화를 표방하니,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결국 포기할 수 밖에 없더군요.
너무 신파로 흐르긴 했습니다. 오히려 내년에 개봉될 강풀 원작의 '26년' 이 더 기대됩니다.

영화 '화려한 휴가' 가 광주에 대해 맛보기를 해 주었다면, 정말 광주의 진심을 대변하는 것으로는 예전 지금처럼 막장으로 가기 전의 M사의 특별 기획 드라마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주연배우로 감우성, 김여진씨가 출연했었지요.
-감우성씨의 출연은 확실한데, 여주인공이 김여진씨였는지는 확실치 않네요.. 김여진씨로 기억하는데.. 누구 이 드라마 제목 아시는 분은 제보좀...-
29만원짜리 문어대가리가 바다로 풀려난 직후 만들어진 드라마입니다.

여기서 감우성은 서울에서 광주에 잠시 놀러온(?) 날나리 청년쯤 됩니다. 여자 꼬시는 걸 인생으로 사는.. 뭐... 그저 그런 청년이지요.. 사상적으로 무장한 것도 아니고, 가방 끈 긴 대학생도 아니고....... 우연히 다니러 온 광주에서 김여진을 만나 약간의 호감을 보이는 그런 평범한 청년입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5월 광주에 올게 뭐랍니까... 워낙에, 형편없는 날나리인덕에, 잡혀도 한심하다며 훈계조치나 받고 풀려나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김여진의 동생인가가 거리에 죽은 주검으로 발견됩니다.
이때 장면이 이번 영화에서도 나왔지요. 리어카에 실린 시신 두구를 앞에두고, 대학생이 광주 시민들을 향해 외칩니다.
'군은 사상자가 한 명도 없다는데, 여기에 있는 이 시신들은 대체 뭡니까..'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감우성은 시신이 실린 리어카를 앞장서서 끌게 되고, 이를 외신 기자가 찍어 보도합니다.

항쟁기간 중 자신도 모르게 항쟁에 참여하게 된 감우성은 결국 공수부대에 끌려가 지독한 고문을 당하지요...
몸도 마음도 망가져 풀리는 날, 그를 고문했던 고문형사가 말합니다. 미안하다고...... 이제는 착하게 살라며.. 이러지요..
'내가 아임 쏘리 라고 하면, 넌 유어 웰컴 하면 되는거야'

풀려난 감우성을 찾아 김여진이 오지만, 그는 '나는 더이상 남자가 아니다' 라고 말합니다.
지독한 고문으로 인해, 그는 남성으로서의 육체를 잃었지요. 그래도 괜찮다며 그들은 함께 삽니다.
20여년이 흐른 뒤, 감우성은 술과 노름에 빠져 고문 후유증으로 망가진 육체가 더 망가졌습니다. 아니, 거기에 정신까지 망가져 가고 있었죠.. 김여진은 그런 남편대신 먹고 살아야 하니, 술집 작부 비슷한 일을 하게 되구요.. 텔레비전에서는 연일 전직 대통령들의 사면 얘기가 흘러나옵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옛 광주의 친구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들은 얘기를 하죠... '김대중 대통령이 용서했는데, 우리가 계속 가지고 있으면 뭘 하겠어... 이제 잊자...'
감우성이 말합니다. '내가 사과를 받은적도 없고, 용서를 한 기억이 없는데, 어떻게 잊혀지냐' 고...... '김대중이가 대체 뭔데, 나를 대표하는 거야?!!' 라고......
그리고는 20년전 자신을 고문했던 형사의 집 앞을 찾아갑니다.
퇴근하는 형사에게 '잘못했다고.. 나한테 잘못했다고 말해!!' 라고 외치는 감우성...
그러나 그는 그를 미친 사람 취급하며, '다 지난일을 가지고 왜그래?' 라고 말한 뒤 자신의 길을 갑니다.
그런 그를 결국 칼로 찌른 감우성이 눈물흘리며 소리치는 것으로 끝이 나지요...

'내가 아임 쏘리라고 하면, 넌 유어 웰컴 이라고 하면 되는거야!!'
'아임 쏘리!!!!'
'유어 웰컴!!!!'

그래요........
전, 지금도 광주의 진심은 여기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도 나타납니다.
이 마지막 장면덕에, 영화가 너무 신파로만 몰며 간과하는 부분들을 눈 감고 넘길수 있었던 겁니다.

김상경과 이요원의 영혼 결혼식 장면......
님을 위한 행진곡을 배경음악으로, 죽은 자들은 모두 함박 웃음을 짓고 있지만, 살아있는 이요원은 죽은 사람과 같은 표정이지요.
진실은 여전히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용서를 구해야 할 자들은 모두 외면하고 있으며, 주위에선 그들을 숭배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가슴을 할퀴기에 여념없습니다. 자칭 '광주의 아들 딸' 이라는 사람들은 어느새 권력에 맛을 들였는지, 그 이름을 팔아 제 배 불리기 바쁘고, 정작 이제는 짐을 놓고, 편히 쉬어야 할 사람들의 마음을 챙겨주지 않습니다.
언제고 때만 되면, 이용해 먹기만 할 뿐이지........
그리고 그 틈을 타고, 악마와 같은 그들이 밀고 들어오고 있지요............
정말................. 지옥 불바다가 이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정말요......


4. 배우들의 연기는..............

이준기? 패스하십시오. -_-

이요원? 전, 이 친구가, 톱스타와 같은 대우를 받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_-
매력이 있는것도, 그렇다고 연기력이 월등한 것도 아닌데, 이 친구가 움직이기만 하면, 언론이 들썩거리는 이유를 도통 모르겠어요.... '고양이를 부탁해' 에서부터 가능성의 조짐을 보였다고는 하는데, 대체 그게 몇년돕니까? 그런데도 이런 생각이 들면, 이건 '가능성' 이 아니지요.......;; 전 영화를 보지 않았습니다만, 저와 취향이 비슷한 지인의 말에 의하면, '그 영화에서 가장 빛났던건 배두나였어! 이요원은 무슨.....' 이라고 평가 내렸습니다. -_-

안성기씨는 전체적으로 무난했습니다만,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들었고.......
아마도, 그간의 이미지와 크게 벗어나지 않는 역이라 그랬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몇 컷 나오지 않은 나문희님의 연기가 참으로 가슴을 울리더군요.
집 밖에 나간 대학생 아들을 기다리는 눈 먼 어미의 심정이 절절하게 느껴졌습니다.
상무대에서 아들 시신을 확인하고는 아들 친구들에게 '자네는 우리 창수 친구람서, 친구 얼굴도 모르는가....' 라고 말하는데, 왈칵 눈물이 치솟았어요..

박철민씨, 박원상씨의 연기도 무척 훌륭했고....... 실은 오히려 주인공들보다 이들을 더 많이 쫓아갔었지요...
인터뷰에서 보듯이, 광주에서 진정 주연은 이분들이시거든요..... 그래서인지, 포스터에 이름이 앞에 들어가지 않아 그렇지, 실제 이분들이 주연과 다름 없었습니다.

김상경씨의 연기야..............정말 나무랄데 없었지요..
극 성경상 전반부에 이준기, 이요원과 함께 연기하는데....... 아아........ 드는 생각이라곤, '이 좋은 배우와 연기하는데, 어떤 신내림이라던가, 그런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냐!! 너희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_-;;
특히 후반부 이요원의 연기요...........orz
그녀가 정말, 껍질을 깨고 연기를 잘 해줬으면, 그 마지막 장면이 더더욱 처연하게 느껴졌을거라구요!!!!!!!!!!!
죽은자는 산자의 표정을, 산자는 죽은자의 표정을 짓는 그 마지막 사진이 말입니다!!
영화의 핵심은 거기에 있다구요!!!!!!!! OTL




이렇게 적었어도, 이 영화는 적어도 상업영화로서의 역할은 잘 해낼 것 같습니다.
다만 더 바라는게 있다면, 제발.......... 어린 친구들이 '아, 슬프지만 재밌는 영화였어.' 에서만 끝내지 마시고, 직접 그 날의 일을 찾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그래야, 이 나라가 발전이 있을게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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