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하루/읽다

이번 지름과, 몽실언니

해오녀 2008. 4. 23. 13:59
몽실언니
미궁에 빠진 조선



드디어 몽실언니를 샀다!!
기왕 살 것 권정생 선생님이 살아계실적에 살걸... OTL

몽실언니를 처음 읽은게 국민학교 2학년인가... 3학년인가 그 무렵쯤 될거다.
교실 뒤 학급문고에 아무렇게나 꽂혀져 있던 낡디 낡은 문고판 허름한 책이 몽실언니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당시 학급문고는 학생들이 집에서 약 3권 정도의 책을 가져와 채우는 것으로, 보기 좋게 말해서 '좋은 책을 친구와 함께 읽어요~' 인거고, 사실대로 말하자면, '재미없어 읽지 않은 집에 굴러댕기는 처치 곤란한 책을 해치우는 기회' 인 셈이다.

아무튼, 몽실언니는 이 축에도 끼지 못하는 책이었다.
즉, 학급문고의 특성상, 학년 말이 되면 학생들이 본인의 책을 다시 집으로 가지고 갈 수 있는데, 몽실언니는 자신의 책을 회수하지 않은 어느 선배 언니, 혹은 오빠의 물건이었다. 여하간에, 당시 활자 중독에 가까웠던 나는 좋다고 몽실언니를 빼어들어 읽어가기 시작했다. (당시 나의 책 읽기는 그야말로 잡식 그 자체였다. 6~70년대 쓰였을 낡고 낡아 너덜너덜한, 온갖 괴상한 종류의 반공도서들도 몽땅 섭렵했었다. -_-)

컬러텔레비전 세대에게는 다소 무리인 듯한(?) 단순하고 간결한 삽화에, 내용은.......................................orz
그래도 어린마음에 뭔가 감동이 크긴 컸는지, 당시 독서록을 보면, 몽실언니를 읽고 답지 않게 장황하게 써 놓은 감상문이 보이더라.. 그리고 친구들에게 권했지만, 돌아온 것은 '뭐 이런 독특한 애가...' 싶은 반응들 뿐이었다.

그러다, 4학년인가.. 5학년 무렵에 M사에서 몽실언니를 방송해줬다. 당시 주말 드라마였던걸로 기억하는데.. 여하간에 굉장한 인기였다. 갑자기, 학교에서 내려진 권장도서 목록에는 몽실언니가 당당하게 장식을 하고 있었고, (물론 그 전에도 권장도서이긴 했었다.) 학급문고에 몽실언니가 여러권 꽂혔으며, 아이들은 너나없이 책을 읽고는 '몽실이가 불쌍하다' 면서 울었다. ( ..)
드라마가 방송되면서 새삼 부는 몽실언니 열풍에 나도 다시 한번 책을 읽었다. 그러니, 어릴적에 보지 못했던 여러가지가 다시 보였다. 하지만, 책을 구입하지는 않았다. 정말 감명깊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사지 않는것은, 몽실언니의 삶이 어린 마음에도 너무 힘들어보였나보다.

그런데, 이제와서 드디어 몽실언니를 구입한 건, 지난 일요일 무료함에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발견한 추억의 드라마 몽실언니를 본 탓이다. 지방 케이블사의 자체 채널에서 오래전에 녹화한 듯한 몽실언니를 1회부터 약 9회까지 틀어주었던 것이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한 회도 빼먹지 않고 시청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자 동시에 다시금 몽실언니를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졌다. 양장본과, 일반 판형이 동시에 팔리고 있었다. 잠시 양장본에서 갈등했지만, 옛 맛을 느끼고 싶어 일반 판형을 샀는데.....
받아들고보니, 어릴때 그 자그마하던 문고판이 아니었다. -_-

어릴적 기억만 떠올리고, 택배 상자를 열었을때, 함께 구입한 다른 책과 같은 크기의 몽실언니를 보고 '헉!! 이게 뭐야!!' 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었다. 읽기 편하게 큰 글씨도 어색하고.. 뭔가 추억을 잃어버린듯한 느낌에 배신감이 살짝 들었지만......
그래도 명작은 어떤 모습을 해도 명작이다. 크기가 커진것을 제외하고는 몽실언니는 내가 기억하던 그대로였다.
퇴근 후 읽으며 다시한번 눈물 한 바가지를 쏟아내었다. 그리고 책장에 꽂힌 다른 책들과 함께하는 몽실언니를 보니 드디어 '오랫동안 미루고 미루던 숙제를 끝낸 기분' 이었다.



어린 마음에 몽실언니를 읽으며 가장 충격적이고 감동했던 대목.......
죄없는 검둥이 아기에게 증오와 멸시를 한껏 뿜어내는 사람들을 향해 몽실언니가 외친 말
'누구든 배가 고프면 화냥년도 되고 양공주도 되는거에요!!!'

실제로 드라마에서 이 장면이 나왔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몽실이 역으로 임은지양, 몽실엄마역에 이경진씨, 몽실아버지 정씨역에 한진희씨가, 새 아버지역으로 박인환씨, 그리고 아마도 몽실이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박씨할머니역으로 여운계씨, 몽실엄마에게 재가를 권했던 마을 주민으로 나문희씨가 출연했다. 그리고 세트는 확실히 요즘 그 '나 세트요!' 하고 티가 나는 세트보다는 훨 나았다. 몽실의 노루실집은 확실히 세트지만, 제법 많은양의 진짜흙을 사용하고 있어, 마을 전경 야외촬영분과 비교했을때 크게 세트의 느낌이 나지 않고있다.(기억에 정씨가 돌아오고, 몽실이가 댓골에서 돌아온 뒤 계속 그 세트장이 집으로 쓰인것으로 보아, 살강마을이 아니라 처음부터 노루실을 배경으로 계속 간듯..)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들은 몽실의 어린 두 남동생들의 죽음과 길바닥에서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의 모습들이 떠 오른다. 원작과는 다르게, 드라마에서 몽실이 밑으로 종국이 종식이라는 두 남동생이 있고, 1화에서 그 밑으로 갓난쟁이 남동생 종오가 있었지만, 굶어 죽은 것으로 나온다. 댓골 계부집에서 천덕꾸러기 취급받는것을 보다 못한 엄마가 둘을 읍내 마음 좋은 노부부에게 보내는 걸로 나온다. 노부부가 아무리 잘 해줘도, 누나를 그리워하던 형제는 몽실이 댓골을 떠난줄 모르고, 누나를 보러, 왔던것처럼 기찻길을 쭉 따라 걷는다. 직접적인 죽음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두 철없는 아이는 기차가 다가와도 피하지 않고 신나하다 죽는 것으로 처리된걸로 기억한다.
아버지의 죽음은 한진희씨의 연기나, 몽실역의 임은지양의 연기가 굉장해서 아주 인상깊었고......
새어머니 북촌댁과 함께 집 댓돌에 앉아 별을 바라보며 어린 동생들과 부르던 노래를 함께 부르는 장면도 기억난다. 노래제목은 모르겠고, '밤 하늘 별이 삼형제, 반짝반짝 정답게 지내더니, 웬일인지 별 하나 보이지 않고, 남은 별님 둘이서 울고 있네요~' 라는 가사만 기억난다. 이렇게 단편적으로 조금씩 기억나는데, 대체 마지막이 어땠는지 기억이 도통 나지 않는다. ;; 원작처럼 30년의 세월을 뛰어넘었던가.. 아니었던가.........

그건 그렇고, 몽실이 임은지양은 뭐하고 지내나 궁금하네... 몽실언니 이후로 몇 번 아역을 하다 관둔 것 같기도 하고, 종국이 종식역으로 나왔던 아이들도 당시 굉장한 인기였는데, 그 드라마를 끝으로 더 이상 텔레비전 출연을 관뒀던가...



미궁에 빠진 조선은 오늘부터 읽을 예정..